정확하지는 않지만 「철도원」이란 영화를 본 건 2001년 12월쯤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 일본에 기필코 가겠노라 다짐하며 다니기 시작한 일본어 학원에 있던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서 본 기억이 있다.
일본내 개봉이 1999년이고 한국 개봉이 2000년이었으니 당시 한국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개봉과 한국개봉 사이에 그렇게 엄청난 시차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좋아해서 언어도 영화로 접근해보고자 했던지라 당시 기타노 다케시의 「소네티네」나 「하나비」를 보면서 일본 영화는 왜 이리 재미가 없을까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철도원」도 실은 재미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결코 재미있는 영화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보게 될 많은 일본 영화들은 포함해서도 이 정도로 감동할 영화는 없을 것 같다.
당시는 일본어가 거의 안 되는 때였던지라 한국어 자막으로 이해한 내용이었지만, 일본 영화가 이리도 감동적일 수 있구나 하고 느낀 내 생애 첫번째 영화였다.
그 때는 다카쿠라 켄이 누군지, 오타케 시노부가 누군지, 히로스에 료코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 때 느낀 감동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설원을 배경으로 한 뛰어난 영상미, 주조연을 막론하고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연기, 더불어 장인정신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한 다카쿠라 켄의 혼신을 다하는 연기의 장면 장면은 이 영화가 뭘 전하고자 하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본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설령 비슷한 컨셉의 일본 영화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감동의 폭이 「철도원」같지는 않을 것 같다.
흥행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일본의 환경이 바뀌고 일본 사람들의 생각이 이전과 같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로 표현되는 일본식 직장문화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대를 이어서 가업을 잇는 경우가 물론 지금도 없지 않고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이어지겠지만 장인정신으로 표현되며 대를 잇는 일들을 자랑스러워하며서 자신의 자식들에도 물려주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1999년의 일본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카쿠라 켄이 보여준 사토 오토마츠는 대를 잇는 철도원으로 직업정신이 아주 투철한 사람이다.
호로마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역의 역장으로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신호점검, 열차점검 등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매너리즘이나 땡땡이는 눈씻고 찾을래야 찾을수 없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근처 탄광으로 번성했던 마을은 폐광이 되자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수요가 없어 적자가 나고 결국 이 역은 곧 사라질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랜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는 도시의 큰 리조트 호텔의 중역으로 가면서 함께 일하자며 오토마츠에게 이직을 권유하지만 그는 평생 철도 일밖에 모르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는 융통성도 없고 고집불통이지만 일본식 장인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마지막 수호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그는 교대할 사람이 없어 역을 지키느라 딸과 아내의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
17년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이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에도, 아내가 죽을 때도 가족이 아닌 철도와 호로마이역을 묵묵히도 지키던 그였다.
본인이 없으면 열차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당시는 일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던 때였지만 일본에 오래 있다보니 그 가치관에 대해서는 약간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는 절대로 못할 거다. 아니, 안 할거다.
내 가족보다 소중한 건 이 세상에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니까. 많은 일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당시에는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더 많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많이 줄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본 사회도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어에도 옛날 얘기지만 “회사에 뼈를 묻는다”는 표현이 있다.
회사나 조직을 위해서 이 한몸 헌신하겠다는 마인드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예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기업전사보다 사축(社畜)이라 불리우는 시대인지라, 「철도원」같은 영화는 두번 다시는 나오기 힘든 명화로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正確ではないが、「鉄道員」という映画を見たのは2001年12月ごろだったと思う。
大学3年生の冬休みの時、必ず日本に行ってやると心決めてから、通い始めた日本語の塾にあったビデオテープを借りて見た記憶がある。
日本国内での公開が1999年で、韓国国内での公開が2000年だったから、当時の韓国の状況を考えたら、日本公開と韓国公開の間にそんなありえない時差があったわけではなかっただろう。
映画が好きで言語も映画でアプローチしてみようと思っていたから、当時北野武の「ソナチネ」や「Hana-bi」を見ながら、日本の映画はなんでこんなに面白くないのかと思っていたところだった。
「鉄道員」も実は楽しいという面だけで見ると、決して面白い映画とは言えない。
しかし、これから見る多くの日本映画を含めてもこんなに感動する映画はおそらくないだろう。
当時は日本語がほとんどできない時だったから、韓国語字幕で理解したけれども、日本映画がこんなに感動的なのかと感じた人生初の映画だった。その時は高倉健が誰なのか、大竹しのぶが誰なのか、広末涼子が誰なのかもよく分からなかったけど、その時感じた感動だけは鮮明に覚えている。
雪原を背景とした優れた映像美、主助演を問わず見る人の目を熱くする演技、匠の魂とは何なのかを見せているような高倉健の渾身の演技の数々は、この映画が何を伝えたいかよく語ってくれている。
しかし、これからこんな日本映画は出てこないだろう。
仮に似たテイストの日本映画が出てくるとしても感動の幅が「鉄道院」にはならないだろう。興行も難しいだろう。
日本の環境が変わり、日本の人々の考えが以前とは大きく変わったと見ているからだ。終身雇用と年功序列で表現される日本式職場文化はもうすでに消えてしまっている。
もちろん、後継ぎで家業を続く場合がまだなくはなく、今後もある程度は続くだろうけど、匠の魂と表現され、後を継ぐことを誇りと思って自分の子供たちにも継がせたい雰囲気がどんどん消えているのも否めない現実である。
この映画が公開された1999年の日本でも、そういった雰囲気がなくはなかっただろう。
しかし、高倉健が見せてくれた佐藤乙松は、後を継いで鉄道員になり、職業に関する考え方が完璧な人だ。
幌舞という本当に小さな田舎駅の駅長で、列車が停車する度に信号点検、列車点検など毎回同じことを繰り返しながらも、マンネリズムやサボりなどは一切考えられない徹底して完璧に仕事をこなす人だ。
しかし、近くの炭鉱で繁栄した村は廃鉱になると、若い人たちが抜け出して需要がなくなり、赤字路線で結局駅は間もなく廃線になるという話を聞くことになる。
長く一緒に働いていた同僚は、都市の大きなリゾートホテルの重役になり、一緒に働こうと乙松に離職を誘うけど、彼は一生鉄道の仕事しか知らないと断固として断る。
一言で言えば、彼は柔軟性もなく、固執不痛だが、日本の匠の魂を代表する人物であり、最後の守護者とも言えるだろう。
そんな彼は交代する人がいなく、駅を守るために娘と妻の死を見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17年ぶりにやっと授かった娘が病気で死んだ時も、妻が死んだ時も家族ではなく鉄道や幌舞駅を黙々と守っていた彼だった。
自分がいなければ列車がちゃんと回らないという理由だった。
当時は日本についてよく理解できない時だったが、日本に長くいてみると、その価値観については少しは理解できるようになった。
しかし、自分に同じことは絶対できない。いや、絶対にしない。
家族より大切なのは世の中にいないし、これからもそうだから。
多くの日本人も同じことを考えただろうと察する。
当時は素晴らしいと絶賛した人々は今より多かったとは思うけど、今はかなり減ったのではないかとも思う。
日本社会も以前と同じではないからだ。韓国語にも昔話ではあるが、「会社に骨を埋める」との表現がある。
会社や組織のためにこの一体献身するという考え方は韓国や日本に以前はあったけど、今は企業戦士より社畜と呼ばれる時代だから、「鉄道員」のような映画は二度と作れない名画として残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

2023-07-08 15: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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